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제국 (문단 편집) === 몰락의 배경과 전후 === * '''너무 비대했던 군부집단''' 근대적 참모제의 시작은 대 몰트케에서 비롯된다. [[헬무트 폰 몰트케]] 원수는 체계적인 분권 지휘를 통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그 공을 인정받아 몰트케 원수는 프로이센의 종신 의회 상원 의원이 되었다. 이러한 공적을 밑거름으로 하여 군부는 제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몰트케 원수가 1888년에 은퇴한 후에도 독일 군부는 여전히 작전 수립과 전쟁 지휘 등 군사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가졌다. "전쟁부"는 그저 전쟁 개시의 가부만을 1차적으로 결의해 카이저에게 상정할 뿐이었다. 앞서 말했듯 이미 군부는 1871년의 전쟁을 토대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이러한 군부를 통제해야 할 사람은 제국의 최고 통수권자인 카이저다.[* 군부는 신과 왕에게만 책임을 진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빌헬름 2세는 너무나도 우유부단하고 무능하면서도 현실 감각이 결여되어 있었다. * '''[[세계정치|무리한 팽창주의]]''' 신세대와 군부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빌헬름 2세는 팽창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시대에 자국 회사의 보호를 명분으로 회사령을 국령으로 삼은 몇몇 식민지들을 제외하면 새로 개척할 식민지는 없었다. 카이저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정책을 위해 [[대양함대]]를 양성하고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를 제독으로 임명하였다. 이는 [[영국]]의 견제 및 [[모로코 위기]]의 씨앗이 된다. 프랑스가 페즈를 점령한 후 빌헬름 2세는 모로코를 요구하는데, 이 때 다수의 국가들, 특히 영국이 [[프랑스]]를 편들면서 독일은 [[모로코]]를 얻지 못한다. * '''[[순무의 겨울|경제력 고갈]]''' 막강했던 제국의 경제력이 전쟁 4년만에 고갈된 이유는 대전쟁 당시 독일의 전시 경제 체제와 관련이 있다.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자신의 의지와 말로 제국 전체의 경제력을 좌지우지했다. 총동원 체제에 나서면서 제국의 모든 경제적 역량이 전쟁을 위한 군수공장 가동 및 잠수함 건조, 전시 철도 개량 등에만 치중되었다. 다시 말해서 균형잡힌 예산 분배가 아니라 군비 100%나 다름없었다. 전쟁 경비는 당시 독일 제국 1년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도 마찬가지여서, 유럽의 교전국들은 미합중국에게서 차관을 얻어 전쟁 경비를 대었다.[* 이로 말미암아 [[미국]]은 유럽 강대국에 대한 채무를 모두 청산하고 반대로 채권국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차관을 얻어오던 [[미국]]이 독일의 적이 되자(1917) 경제난은 더욱 심각해졌다. 루덴도르프는 이를 타개하고자 [[총력전]](Der totale Krieg)을 전개한 것이다. 그러나 [[춘계 공세]]의 패전 이후 독일 제국은 경제적 과부하가 걸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패전을 맞게 된다. * '''[[배후중상설|전후의 여파]]''' [[에리히 루덴도르프|루덴도르프]]는 전후에 [[배후중상설]]을 제기하였다. 다시 말해서 대전쟁에서의 경제력 파탄은 좌파 [[공산주의]] 세력과 [[유대인]]의 책임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제적 파탄의 원인은, 독일 제국이 군비에 너무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예산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하부 조직들이 차례로 무너지는 마당에 군부가 군사를 지휘해 협상국의 군대를 뚫고 프랑스의 항복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제국 전체의 적인 유대-볼셰비즘을 타도하기 위해 [[라팔로 조약|비밀리에 군사 증강을 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 중반에는 협상국과의 여러 조약으로 경제력이 잠시나마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했고 프란츠 폰 파펜은 슐라이허 내각을 무너뜨리기 위해 히틀러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러나 파펜은 총리가 된 히틀러에 의해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히틀러는 [[제3제국]]을 개창했으며, 독일을 다시 파멸로 몰아넣게 되어 [[오데르-나이세 선|패권의 확장은 커녕 영토만 더 잃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독일의 손해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배후중상설을 밀어붙인 독일의 기득권층에게도 재앙으로 다가왔는데 이들의 거점인 독일 동부 지역은 동독, 폴란드, 소련 삼국이 나눠가지게 되었는데 셋 다 공산주의 정권인지라 지주인 이들로서는 버틸 수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